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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곡식을 먹는다.  충분히 씹어 먹는다.  조금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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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LA에는 코리안 마마로 불리는 글로리아 김이라는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이십년이 넘게 날마다 노숙자들을 직접 일일이 찾아다니며 음식을 제공하는 구호활동을 하시는 분인데.

이분께서 80년대 중반쯤에는 서울에 계셨습니다. 거리에서 걸인들을 눈에 띄는 대로 거두어 쌍문동 집에서 돌보고 계셨지요.  그때 잠시 가깝게 교유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을 통해 성경에 나오는 무교병(통밀떡)을 알게되었습니다당시 청계8가 중앙시장에서 중고타자기 장사를 하고 있었던 저는 오후 늦게까지 아침도 못먹을 정도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손님으로 오셨던 그분은 얼마후 그런 저를 보시고 안타깝게 여겨 하루는 칼국수를 끓여 오셨습니다교통도 불편하던 그시절에 쌍문동 집에서 직접 끓여 버스를 타고 청계천까지 가지고 오신 것이지요.

그런데 그 얼마 후에는 문제의 그 무교병 (통밀떡)이란 걸 가지고 오셨습니다.

영화 십계로 내용이 잘 알려진이집트에서 열가지 기적을 일으켜 자신의 백성을 구출한 그 특별한 일을 기념하여 하느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먹으라고 명령한 음식이니 얼마나 몸에 좋겠느냐 면서. 그리고 통밀싹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었지만 그 당시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분이나 저나 젊을 때였고 미국 시민권자였던 그분은 결혼하신 분이었지만 남편이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그 분의 그 친절은 남이 보면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한국에 혼자 나와있는 삼십대의 젊은 여자가 이십대 후반의 젊은 총각을 위해 쌍문동에서 청계천까지 버스를 타고 음식을 싸가지고 오는 것을 순수하게만 볼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지물론 저는 그분의 순수한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음식에 대해 무지해서 아무것이나 가리지 않고 먹던 시절이었고제 자신은 제 몸이 건강하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그 분이 보시기에는 심각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 일년쯤 전인가 잠시 정신을 잃고 쓰러진 일이 있었는데 그게 뇌졸중이었는지도 거의 이십년 정도가 흐른 다음에야 알았을 정도로 무지했으니. 

  정말 맛대가리 없이 생긴 꼭 개떡같이 생긴 그 통밀떡이 얼마나 좋은지 간곡하고 간절하게 거의 호소에 가까울 정도로 밥 대신 상식할 것을 권하셨습니다.

 

  그 얼마후 사업을 접고  그 충격으로 이년정도를 폐인처럼 지내다 김천의 한적한 곳에 내려가 독서와 사색과 산책만 하며 지내게 될 기회가 있었습니다몸에 좋다는 그 말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식어도 먹을 수 있고 국이나 반찬이 없어도 먹을 수 있고 가지고 다니면서도 먹을 수 있다고 하셨던 그 말씀이 떠올라 자취생활에 아주 좋을 것 같아 그 통밀떡을 주식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당시에는 우리밀 살리기 운동이 일어나기 전이어서 밀을 구경하기도 쉽지 않은 때였지만 한 잡곡상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돌 뉘 겨 쭉정이가 얼마나 많았는지쥐똥도 적지 않이 들어있고물에 몇 번을 씻고 조리질을 해서 돌을 걸러내고 대충 말려 방앗간에서 빻아와 석유곤로에 쪄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먹기 시작한지 바로 다음날부터 하루하루 제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웠는지석달쯤 지나자 저는 그 동안 제 자신이 세상을 얼마나 헛살아 왔는지 절실하게 깨닫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또 한번 더 눈을 감았다 뜨고 또 다시 보아도 그 똑같은 세상이 왜 그렇게 아름답고 감사한 것인지.


   제 몸과 정신에 일어난 그 기적같은 변화를 체험하고 난 뒤, 서울에 올라온 저는 틈나는 대로 음식과 건강과 자연의학에 관한 책들을 시간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또 여러 가지 먹거리로 제 몸을 대상으로 관찰과 실험을 하였습니다.

  각종 과일은 물론이고 어떤 때는 일주일 동안 삼시 새끼 김치만 먹기도 하고그러다 한번은 죽을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열무 씨앗을 싹 틔워서 믹서에 갈아 한컵을 그대로 완샷했다가 삼킨 순간 배를 잡고 그 자리에 오그리며 쓰러져 버린 거지요미동도 할 수 없었고 소리는 커녕 숨도 쉴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었지요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번듯 스칠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한 순간에 모든 일이 일어났는 지도 모르겠네요.  한순간 갑자기 창자가 저절로 요동치더니 순식간에 제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똥이 나오고 말았습니다이른바 생똥을 싼 것이지요그 똥의 색깔이 그대로 무즙싹 색갈처럼 초록색이었습니다내 몸이 스스로 살겠다고 순간적으로 반응한 것이지요갓 발아한 열무새싹이 그렇게 독한 줄을 모르고 먹었다가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병이 왜 생기는지 병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경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차츰 그 이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그러다 보니 생활에 쫓기는 처지임에도 주위에서 아픈 분들을 만나면 외면할 수 없게 되었고 안타까워서 조언을 하고 도와 드리곤 했습니다. 주제도 모르고.

 

  조금 심각하게 생각되는 병에 걸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당황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용한 의사도 많고 용한 처방도 많고 몸에 좋다는 음식은 물론그 비싼 기능성 식품에 읽어야 할 건강서적들은 왜 또 그렇게 많은 건지현역 의사들의 저서와 자연의학과 대체의학 쪽 저서들 사이에 도데체 어떤 말을 들어야 하는 건지자연식이라는 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혼란에 처한 그 분들께 병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아주 쉽게 원리를 설명해주고 실용적인 간단한 방법을 나름대로 알려주곤 했습니다지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였지만 모른 체 할 수는 없었습니다.

 

   초창기 시절의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가 서교동에 있었습니다농가에 보급할 종자도 없어 애태울 무렵 그 귀한 종자를 사정사정해서 어떤 때는 한말 어떤 때는 반말을 구해와 정작 저는 먹지도 못하고 주위의 아픈 분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에 저 말고도 주로 암치료 목적으로 통밀을 구해가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좋은 통밀을 나누어 주면서 정작 그분들은 그 통밀이 얼마나 좋은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말도 안되는 잘못된 민간요법에 빠져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암환자 가족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본부 사람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간단한 설명과 함께 석달을 먹으면 내몸이 완전히 바뀐다는 말을 해주었더니 얼마후 1KG짜리 통밀상품 비닐봉지에 그 문구가 그대로 들어가 판매되기 시작한 일도 있었습니다그 당시 우리밀살리기 운동본부가 무척 어려울 때여서 항상 죄스런 마음이었지요통밀이 얼마나 좋은지 널리 알리면 없어서 못팔텐데몇년후 우리밀 운동본부가 부도직전에 몰리고 결국은 농협이 모든 부채를 떠안고 인수하게 되었을 때 적지않은 도움을 받은 저로서는 얼마나 죄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위생병원장이던 정사영 박사께서는 환자들에게 처방전대신 현미를 먹게하여 많은 환자를 낫게 하였고, 그 치험례를 엮어 기적을 낳는 현미"란 책을 시조사에서 펴내었습니다. 75년도에 초판을 찍어낸 책입니다어린시절 위생병원에서 멀지 않은 전농동에서 살았기에위생병원에 가면 의사가 약을 주지 않고 현미를 먹으라고 한다며 그분의 처방을 기가 막혀 하며 웃어대던 어른들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그 독한 DDT도 기가막히게 좋은 약으로 알고 온몸에 뿌려대던 시절이었으니약을 주지 않고 백미밥도 아니고 현미를 먹으라고 하였으니기가 막힐 일이었을 것입니다그 당시는 현미는 백미에 비해 아주 열등한 음식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으니.

  그 책에 나온 치험례를 보면 현미로 고치지 못할 병이 없구나 하고 느낄 정도입니다.

 

      기적을 낳는 현미 목차

 

  그런데 제 경험으로는 저에게는 현미보다 통밀이 최소한 두세배많이 과장하면 백배는 더 효과가 있음을 느끼곤 했습니다그만큼 몸으로 느끼는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항상 현미잡곡밥을 먹었음에도 가끔이라도 통밀떡이나 통밀 잡곡밥을 먹지 않을 수 없었는데 예전에는 수확철을 놓치면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지금이야 인터넷에서 사철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구례괴산익산김천나주강화김포영등포 등등 잡곡상에서 어렵게 소수문해 구입하곤 했습니다그나마도 구하지 못했을 땐 왕십리 중앙시장 잡곡상에 수입밀까지 구입해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그것도 없을 땐 찰쌀보리나중에는 겉보리까지 빻아서 먹어보았네요.

 

   그 어렵게 구한 밀을 정작 저는 거의 먹어보지도 못하고 남주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거의 대부분 백이면 백현대의학이라는 신에 의존하게 되지요.  배우지도 못하고 평생 장사만하며 살아온 한낮 장삿꾼에 불과한 제 말을 믿는다면 믿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 될 터입니다.

  현대의학을 맹신하다가 재산은 재산대로 날리고 환자는 환자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갖은 고생을 다 하고도 결국은 가슴 아픈 결과를 맞이하던 분들아저씨 아저씨아저씨 말이 맞었어요남편을 암으로 잃고서 뒤늦은 후회로 그렇게 말씀하시던 아주머니도 나중에 암판정을 받고 아들 손에 이끌려 갔던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어쩌다 한번찾은 병원에서 생명과 재산과 가족까지 담보 잡혀 오도가도 못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정말 가슴 아픈 현실을 많이 지켜보아야 했습니다처음 어떤 상태로 시작해서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나중에 어떤 결과를 보게 되었는지.

 

  물론 병원치료로 건강을 되찾은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그런 분들도 대부분 생활습관식생활을 바꾸면 얼마든지 집에서 치유될 수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분들 역시 식생활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재발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미완의 치유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병, 문명병, 식원병, 역천병, 생활습관병이라 불리는 병들은 바른 식생활과 바른 생활습관을 실천했을 때에만 온전히 치유될 수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되면 모든 분들이 한결같이 본격적으로 건강전도사로 나서게 되는 건 너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저 역시 제가 알게 된 건강에 대한 진리를 이웃들에게 알리는 게  아주 아주 오래 전부터 제 간절한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기에 얼마나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능력이 없어 오늘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하루하루가 힘든 삶이었지만 항상 죄의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아주 긴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고 더 미룰 수 없어하던 일을 올해는 어떻게든 정리한 후에 시간적 여유를 만들어 시작하려 하였으나 이번에 어떤 계기가 되어  긴급하게 일단 이 공간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병원에서 손을 들었을 정도로 위중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비아프라의 비극에 나오는 아이들 처럼 배가 남산만 해 있었지요.

선친께서는 간경화로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셨고, 6.25때 아버님께서 이북에 두고온 이복 누나는 중국땅에서 간암으로이복형은 간경화로 죽었고저도 B형 간염과 간이 굳어서 오랜동안 고통을 겪었습니다. 만성식도염, 만성위장병심한 변비치질천식알레르기비염수족냉증, 만성피로, 전립선염, 불안장애, 공황장애, 우울증 등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지요엄청난 하혈도 했었고.

  어린 시절은 물론 선대로부터 내려온 가슴 아픈 가족사까지, 그리고 감추고 싶은 제 부끄러운 과거까지 다 털어놓으려면시간에 쫒기는 제게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지만

 

    우선 간단하게나마 제가 무엇을 어떻게 먹었고

                                  어떤 변화가 있었고,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리는 것만도 큰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우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질병 만연시대, 질병세일시대에 살다보니 많은 분들이 에지간한 현대병은 의례 당연히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상태가 대단히 심각한 상태에 있음에도 그 심각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았습니다설사 인식을 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식습관을 바꾸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절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건강은 지식이 아니라 실천이며 병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먹는 음식, 생활습관과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통밀떡과 통밀새싹은 제가 삼십년동안 온몸으로 두고두고 경험해 왔기에 그 어떤 것보다 더 자신있게 권해드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경제적이고 쉽고 부작용이 없으면서도 그 효과가 즉각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성경적 근거에 의해 실천해온 지식들은 그 근원이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아버지이기에 불변의 진리들이므로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평생을 거의 장사를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장사도 잘 되고 사람도 많이 모여들었지만 항상 손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그러나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지난 이십여년간 겪었던 이런저런 고생은 누구도 모르는 참으로 힘든 것이었습니다에지간한 사람이라면 진작에 사표를 쓰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짧지 않은 그 힘든 시간 동안에도 단 한번도 허튼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산다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 결코 밥 한공기에 담긴 의미를 넘을 수 없음을 깨달았기에, 한공기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참으로 힘든 시기에도 힘든 순간에도 항상 감사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이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저는 제 나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푼수같은 순수와 열정을 아직도 지니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제 자신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그 모든 것은, 성경적 근거에 의해 깨달은 바른 식생활이 제게 육체적 정신적 건강 뿐만이 아니라 겸손과 자족, 평화와 행복같은 영적 건강까지 선물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삼십여년전 그 옛날 글로리아 김 선교사님께서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에게 전해주셨던 것은 무교병이 아니라 감동이었습니다. 단순히  통밀떡에 대한 지식만 전해주었다면 저는 통밀떡을 먹어보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그분이 전해 준 감동때문에 제 인생이 바뀌었고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길은 저 역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위 분들에게 제가 알게된 건강진리를 진솔하게 최선을 다해 전해 드리는 길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덫에 걸려 시간에 쫓기고 어려움이 많고 또 무엇보다도 배운 것이 없어 부족함이 많겠지만 부디 행간에라도 녹아있는 저의 간절한 진실함을 느끼시고 꼭 꾸준히 실천하셔서 참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이 시대에 물질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본인과 가족의 건강은 물론 더 높은 영적 평화와 행복까지 모두 누리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2018. 4. 12.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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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밀떡이야기'는 어떠한 상업적광고도 거부하며 철저히 비영리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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